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7대 대통령 선거 (문단 편집) === [[10월 유신|유신의 원인이 되다]] === > “이것 봐. 내가 그래도 그동안 잠자고 있던 국민이 일어서서 일하게 하는 세상을 만들고 나라를 위해 열심히 기여했다고 생각을 하는데, '''김대중씨가 뭐를 했다고 95만 표 차이밖에 안 나?''' 내가 이름이 나도 김대중보다 더 낫고, 선거비용을 써도 김대중보다 훨씬 더 많이 썼는데 말이야. 행정력은 또 얼마나 사용했나. 선거라는 게 민주주의를 위해 불가피한 것이긴 하지만 이게 큰일 날 수도 있어. 다음엔 김대중이 될지도 몰라. 선거를 하다 보면 앞날을 제대로 내다보고 건전하게 나라를 열어 갈 위인이 아닌 엉뚱한 사람이 뽑힐 수 있어. 그럴 땐 조국 근대화라는 혁명 과업에 지장이 생길 수 있어. '''그러니 내 좀 [[10월 유신|특수한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 (선거 다음 날 박정희의 발언) > ---- > [[https://www.joongang.co.kr/article/18123011|[김종필 증언록] “김대중 뭘했다고 95만 표 차이밖에 …” 낙심한 박정희의 화살, 과녁 벗어나 “큰일 나겠어” … 유신을 작심했다]] [[박정희]]는 [[갑툭튀|갑자기 등장한]] 40대 후보 [[김대중]]과 예상외의 접전을 벌이며 체면을 구긴다[* 사실 7대 대선은 거의 부정선거였다. 군인을 비롯한 공무원들은 노골적으로 박정희를 찍으라고 강요를 받았고, 울산 시장은 중앙정보부의 지시를 받고 투표 결과를 조작하기까지 했다. 또한 공화당과 중앙정보부 요원들은 김대중이 정권을 잡으면 경상도에 피의 보복이 있을 거라는 망언을 공공연히 하고 다녔고, 서울에서 영남으로 내려온 참관인들한테 전라도놈 앞잡이들은 모두 꺼지라고 협박을 하고 쫓아냈다. 그래서 영남 지역에는 참관인들이 아예 발을 붙이지 못했다. 그리고 영남 지역 야당 인사들한테는 전라도놈 앞잡이 하지 말라고 떼로 몰려와 구타와 협박을 일삼는 식이었다.]. 여기에 더해 대선 한 달 뒤 치러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진산 파동]]이 터지며 야당인 [[신민당(1967년)|신민당]]에게 선거 판세가 불리하게 돌아갔지만 예상을 깨고 신민당이 89석을 확보하여 개헌저지선(69석)을 훌쩍 넘는 의석수를 획득하는 이변을 일으킨다. 선거 운동 중 박정희는 "다시는 국민에게 [[통일주체국민회의|표를 달라고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고, [[김대중]]은 "박정희가 이번에도 집권하면 [[총통]]제가 [[10월 유신|실시될 것입니다]]." 라고 했는데,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모두 맞아떨어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